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늦은 시간에 방영된 프로그램을 흑백 TV로 보았던 유명한 영화, 로마의 휴일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. 사춘기 시절 "사랑이 무엇일까"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영화이자, 성장해서 꼭 로마에 방문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만든 영화입니다(하지만 아직까지도 방문하지 못했습니다)
이 영화는 1953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연출하고, 오드리 헵번(정말 인형이 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)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은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. 이 작품은 오드리 헵번의 첫 주연 영화로,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했습니다
1. 영화의 특징과 주요 배우
이 영화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세 가지로 요약을 해보면, 로마의 다양한 명소에서 촬영하여 로마의 아름다운 배경을 스크린에 담아 도시의 매력을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.
그리고 첫 주연을 맡은 오드리 햅번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. 청순하고 우아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. 마지막으로 전형적인 해피엔딩 대신, 각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현실적인 결말을 선택하여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(만약, 결말이 해피엔딩이었으면 감동이 절반으로 반감되었을 것 같습니다)
주요 배우는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입니다
유럽의 어느 왕국의 공주로, 공식 일정에 지친 나머지 로마에서의 일탈을 감행하는 앤 공주(오드리 헵번)
로마 주재 미국 신문사 기자로, 우연히 앤 공주를 만나게 되며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는 조 브래들리 (그레고리 펙)
오드리 헵번의 상대역으로 남자 배우인 그레고리 펙의 캐스팅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"세기의 커플"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
2. 간략한 줄거리
로마를 방문 중인 앤 공주(오드리 헵번)는 공식 일정에 지쳐 대사관을 몰래 빠져나와 도시를 탐험합니다. 거리에서 수면제의 영향으로 잠든 그녀를 조 브래들리(그레고리 펙)가 발견하고,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갑니다. 다음 날, 조는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특종을 노리지만,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에게 진심으로 끌리게 됩니다. 결국 조는 특종을 포기하고, 앤 공주는 왕실로 돌아가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가슴 아픈 그러나 비극적이지 않은 줄거리입니다
3. 인상 깊은 장면
1. 진실의 입 장면: 이 장면에서 조 브래들리(그레고리 펙)는 앤 공주(오드리 헵번)에게 '진실의 입'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설명합니다. 그런 다음 조 브래들리는 장난스럽게 손을 입에 넣고,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잃은 척 연기합니다. 이에 놀란 앤 공주는 비명을 지르며 조 브래들리의 팔에 매달리고, 조 브래들리는 웃으며 장난이었다고 밝힙니다. 이 장면은 두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완화시키고,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감정을 더욱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
2. 마지막 기자회견: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앤 공주(오드리 헵번)는 공식적인 기자회견에 참석합니다. 그녀는 다시 공주의 역할로 돌아가, 전날의 자유로운 경험을 뒤로하고 왕실의 의무를 수행합니다.
기자회견장에는 조 브래들리(그레고리 펙)도 참석해 있습니다. 그는 앤 공주와 함께한 시간을 기사로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,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합니다. 기자회견이 끝난 후, 조 브래들리는 앤 공주에게 함께한 시간 동안 찍은 사진들을 담은 봉투를 건넵니다.(가슴이 먹먹합니다. 내가 그레고리 펙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) 이는 조 브래들리가 그녀와의 추억을 기사로 쓰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며, 앤 공주는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 브래들리를 바라봅니다.
4. 오드리 헵번의 삶
오드리 헵번은 1929년 5월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습니다. 어린 시절, 제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에서 나치 점령하에 살아야 했으며, 이 시기의 경험은 그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. 전쟁 후에는 발레리나를 꿈꾸며 무용을 공부했지만, 건강 문제로 인해 무용수의 길을 포기하고 연기자로 전향하였습니다.
1953년, 영화 『로마의 휴일』에서 앤 공주 역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습니다. 이후 『사브리나』(1954), 『전쟁과 평화』(1956), 『티파니에서 아침을』(1961), 『마이 페어 레이디』(1964) 등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. 특히, 『티파니에서 아침을』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패션 아이콘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.
1988년, 헵번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에티오피아, 수단, 방글라데시, 베트남, 멕시코 등 전 세계 50여 개국을 방문하며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을 위한 구호 활동에 헌신했습니다. 그녀는 "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.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"라는 말을 남기며, 인도주의적 활동에 대한 깊은 신념을 드러냈습니다.
1992년, 헵번은 소말리아에서의 구호 활동을 마친 후 대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. 이후 스위스의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, 1993년 1월 20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. 그녀의 사망 후, 아들 션 헵번은 어머니의 유산을 이어받아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을 운영하며, 전 세계 불우한 아동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.
오드리 헵번은 단순한 영화배우를 넘어,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전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기억됩니다. 그녀의 삶과 업적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, 저에게도 크나큰 감동을 준 사람이었습니다, 생전에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녀의 우아함과 따뜻한 마음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.